영원한 뮤즈인 김복순.
1940년경 당시 평양의 평균기온이 -20도인데, 하지만 돈이 없어 외투조차 없었던 박수근.
아내에게 편지로 강추위에 대해 토로하는데, 남편의 소식을 들은 복순의 행동은?
자신의 빨간색 목도리를 풀어헤칩니다. 스웨터를 짜기 위해 자신의 빨간색 목도리를 풀어헤칩니다. 하지만 털실이 부족해서 스웨터 대신 겨우 조끼로 완성합니다.
그리고 김복순 여사님이 눈병이 났었대요. 낮에는 밭일을 하고 밤에는 뜨개질을 합니다.
두 분의 사랑이 애절하다고 느낀 게 편지를 매일 주고받으셨대요.
시어머니는 우푯값도 안 나오는데 편지 보내지 말라고 했다고 해요. 이 소식을 듣고 우표를 동봉해서 보낸 박수근. 시어머님의 만류에도 계속 써 내려간 두 사람의 사랑 시, 몰래 쓴 편지를 아이들을 시켜 몰래 우체통에 넣곤 했다고 해요. 첩보 작전 버금갔던 두 사람의 러브레터.
김복순 여사는 박수근의 좋은 반려자이기도 했지만, 그에게 최고의 모델이자 뮤즈이었죠. 김복순이 모델이었던 맷돌질 하는 여인은 입선 소식까지 가져다 줬죠.
장시간 동안 그림 모델을 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사랑의 힘으로 완성.
박수근님 이 작품을 금성에서 그리고 평양으로 간 거예요. 박수근 대신 그의 가족이 그림을 출품했고, 입선의 기쁨을 누렸죠.
아내 복순은 금성에 있었잖아요. 평양에서 고생하는 수근을 본 그의 부모님은
당시 돈 20원을 며느리에게 주었고, 생필품을 산 복순은 곧장 평양으로 갔죠. 그렇게 시작된 신접살림.
좁디좁은 단칸방에서 살았던 박수근네. 당시 박수근의 월급은 고작 32원이었는데 내야했던 월세는 12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김복순 여사. 뜨개질로 살림을 보탰던 내조의 여왕.
사실 좋은 남자의 조건은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육아까지 잘해야 비로소 완성되죠. 자식들을 위해 동화책을 직접 제작합니다. 박수근의 고구려이야기.
박수근이 동화그림을 그리면, 아내 김복순은 이야기를 썼다.
가난 했던 형편이었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만든 동화책.
애틋함이 넘쳤던 박수근과 김복순.
박수근 화백의 일생기, 미만인 김복순 . 박수근이 세상을 떠난 후 남편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걸 깨달은 김복순.
25년동안 함께 살며 알게 됐던 모든 것들을 자필로 하나하나 기록합니다. 편지 마지막에 프러포즈했던 구절이 나오는데
실제로 아내를 모델로 그림을 만히 그렸잖아요.
아내 김복순의 기록 덕분에 알 수 있는 사랑꾼 박수근의 면모.
출처: 선을 넘는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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