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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벌거벗은 한국사, 일본은 왜 조선의 책을 훔쳤나?

by 속좁은펭귄 2022.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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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노린 것은 조선의 손재주나 기술, 이게 끝이 아닙니다. 도자기 외에 일본이 약탈한 것은? 바로 왕조차도 힘들게 구해야 했던 물건입니다. 

 

 

 

 

일본은 왜 조선의 책을 훔쳤나?

그 당시 대학과 중용은 2년 치 쌀값이에요. 왕세자가 책을 빌리는 일까지 있었어요. 그런데 일본은 왜  조선의 책을 가져간 걸까요?

1493년부터 1590년까지 무수한 세력이 다투던 일본의 전국시대에 일본은 끊임없이 내전들이 벌어졌죠. 전쟁 나면 약탈하고 불타고 내전으로 책이다 손실되어서 조선에서 훔쳐서 보충하려던 거예요. 궁궐과 양반집 등 모조리 긁어모아 약 10만 권을 약탈합니다. 일본이 가져간 조선의 책은?

 

 

이런 책뿐만 아니라 유학, 불교, 문집 등 어마어마한 책들을 가져가게 된 것이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겨우 글을 읽고 쓸 정도였고 악필로도 유명하다고 해요. 글을 몰랐던 왜군들은 어떻게 책을 선별한 걸까요? 바로 높은 학식을 지닌 일본의 승려들 때문이라고 해요. 명망 있는 승려들에게 자문을 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치밀하게 문화재 약탈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일본이 약탈한 건 문화재뿐만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조선의 지식, 선비들도 끌고 갑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맹활약한 전쟁이 명량해전이죠. 1597년 9월 26일 울돌목에서 133척의 일본 수군과 맞붙은 이순신 장군 반면 12척의 배로 일본군을 격퇴했죠.

 

 

이거 수능시험이나 역사시험에서도 많이 나온 문제라고 해요. 갑자기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는 이유는?

 

 

문제의 정답은 5번이죠.

 

이순신과 연관된 선비 납치 사건이 있다고 해요. 전남 영광에서 군량이 수송 임무를 맡고 있던 한 선비가 있는데 이순신 장군이 일본과의 해전을 앞두고 있다는 거죠.

 

 

바로  1567~1618년까지 조선 중기의 선비이자 의병장인 강항입니다. 

 

 

식솔들과 함께 떠나다가 왜군들과 맞닥뜨린 거죠. 잡히지 않으려 강으로 뛰어들었지만, 강에서 강항을 건져낸 왜군은 갓을 쓰고 명주옷을 입은 걸 보니 관직에 있는 사람 같으니 포박해서 일본에 보냅니다.  일본이 조선 선비들을 높은 가치로 매겼다고 해요. 결국 전리품으로 일본에 끌려가게 됩니다. 

일본과 맞서기도 전에 포롤 잡힌 비참한 상황, 죽음을 각오한 탈출은 번번이 실패하고 일본에 도착하자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해요. 일본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역사, 지리 공부에 매진을 했고, 간양록을 펴냅니다. 

 

 

바로 일본의 약점과 비밀들, 처음엔 책 이름이 간양록이 아니고 건차록이었다고 해요. 건차는 죄인이 타는 수레로 적군의 포로가 된 것 자체가  불충이라며 위기를 기회로 바꾼 조선의 스파이 강항. 

일본의 약점을 기록한 간양록의 내용은 일본의 역사, 일본의 풍속, 일본인의 성질, 지리와 기후에 대해서 적었다고 해요. 당시 조선이 잘 몰랐던 일본의 정보를 기록, 또한 일본의 군사 전력을 면밀히 파악하고 일본을 물리칠 군사적 방책까지, 일본으로 가는 사신들의 필독서이기도 합니다. 이후 일제강점기 시절 금서로 지정되었죠.

일본의 역사, 지리뿐만이 아닌 일본 장수들의 성격과 대립관계 등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선 두려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강항때문에 일본의 역사가 크게 바뀌게 됩니다.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도 오직 조선만을 생각했던 강항은 살아서 대마도를 지나 부산을 한치만이라도 바라보게 된다면 아침에 갔다 저녁에 죽더라도 다시 털끝만큼의 여한이 없겠다.

그렇다면 강항이 일본을 벗어날 비책은? 바로 글인 거예요. 글을 팔아 귀국 비용을 마련하기로 한 강항, 그리고 강항의 글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후지와라 세이카는 전국시대 말기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성리학자인데 강항에 세 스승이 되어달라 간청을 하죠. 세이카는 강항에게 유학을 배우고 싶었던 거예요. 결국 세이카를 제자로 맞은 강항,  논어와 맹자, 대학, 중용 등 두 사람이 함께 엮어낸 사서오경, 그것이 바로 일본 최초의 유학 교과서가 됩니다. 

 

 

사서오경 왜훈본은 사서오경을 일본 음으로 읽을 수 있게 한 책으로 이 책을 계기로 유학이 민간에 개방되죠. 

 

 

일본은 임진왜란을 통해 많은걸 앗아갔어요. 임진왜란 이후 일본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일본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특히 문화 부문의 발전은 엄청났죠. 

 

 

출판문화의 발달로 보급된 일본 교육기관인 데라코야, 제조기술을 확보하면서 세계 도자기 시장도 장악, 조선 기술의 유입으로 각종 제조술이 발달하게 되죠.

 

 

그리고 일본의 침략으로 산산조각이 난 조선의 평화, 일본이 조선의 문화를 훔쳐간 문화전쟁이에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역사학자는 임진왜란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사치스러운 해외유학이었다. 그리고 유학의 비용은 조선인의 피와 눈물이었다.

전쟁 후 무너진 조선은 변화의 계기가 필요했죠. 기술과 문화의 중요성이 더욱 와닿는 시간이죠. 징비는 잘못을 꾸짖어 다시 범하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뜻이죠. 우리도 잊지 말고 경계해야 합니다. 

 

 

<출처: tvN 벌거벗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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